인물 탐구 ㅣ ‘있을 때는 겸손하라. 그러나 없을 때는 당당하라’, 삼성 창업주 이병철
기본 인적사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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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생 1910.02.12 (경상남도 의령군 정곡면)
사망 1987.11.19 (향년 77세)
가족 배우자 박두을, 사실혼 박소진, 첩 구라다 사토코 / 아들 이창희, 이건희, 이태휘 /
딸 이인희, 이맹희, 이순희, 이덕희, 이명희, 이혜자
학력 와세다대학 (정치학, 명예박사)
업적
삼성 창업주, 대한민국의 최상위권 대기업 그룹인 삼성그룹, CJ그룹, 신세계그룹이 이병철을 1세대로 하여 비롯됨
한솔그룹, 중앙그룹, BGF그룹도 포함
생애
지방 양반가 출신으로 태어나 천석꾼의 집안에서 유복한 유년기를 보냄
17의 나이로 3살 연상 아내 박두을과 혼인함
서울 종로의 중동학교를 졸업하고 와세다대학 부속 전문부 정경과에 입학했으나, 건강악화로 조선으로 돌아옴
하지만 1970년 와세다대학 명예박사 학위를 받음
와세다대학동창회 활동 중 롯데 신격호 회장, 박태준 포스코 회장을 많이 챙겨줌
친구들과 도박의 일종인 골패에 빠짐, 20대 젊은 시절 한량이었음
26살 4명의 아이의 아버지가 된 그는 방문을 열고 달빛에 비친 아이들의 자는 모습을 보고 정신을 차림
허송세월을 보낸 것을 자책하고 독립운동, 공무원, 사업 중 자신이 할 수 있는 것을 생각하다가 사업을 하기로 마음 먹음
부친에서 쌀 300석분의 토지를 지원받아 마산에서 협동정미소 창업을 시작으로 운수업에 진출함
이후 부동산업에 진출했으나 전시 체제로 전환되며 대출이 중단되어 사업이 망함
이를 정리한 후 남은 돈과 부친의 지원으로 만주와 조선간의 중계무역을 하는 삼성상회를 설립함
제분업과 제면업으로 삼성을 일으키고 별표 국수가 대구에서 이름을 날림.
건어물, 과일 유통 무역으로 진출하여 크게 성장한 후 1942년 조선양조를 인수함
6/25전쟁 이후 북한이 서울을 점령하자 90일간 북한군을 피해다님, 이 때 공산주의에 부정적인 인식을 가지게 됨
서울을 간신히 탈출해 1951년 부산시에 삼성물산을 설립하고, 전쟁으로 널려있는 고철을 수집하여 일본에 팜
일본에서 벌어들인 돈으로 중국에서 설탕, 비료를 수입해 국내 시장에 공급하며 6개월만에 10억원, 1년 뒤에는 60억원 재산을 쌓음
전쟁 후 구리 탄피를 긁어모아 재수출하는 사업을 하며 돈을 쓸어담음
삼성물산에서 모은 자금으로 제일제당(CJ그룹 전신), 제일모직을 설립하며 사업을 펼침
부친이 이승만 정권과 친분이 있었고 정부로부터 달러 지원을 약속받아 비료 공장 설립 계획을 세움
4.19혁명으로 이승만 정권이 몰락하며 비료 공장 설립은 수포로 돌아감
이후 부정축재와 탈세 혐의로 검찰에 연행되어 벌금 50억을 냄
5.16 군사정변 후 부정축재로 구속되었으나 사업 투자로 나라에 기여하게 해달라고 요구하며 박정희 정권과 관계를 맺음,
울산에 세계 최대 규모의 비료 공장 설립, 사카린 밀수 사건이 터짐
이 일로 경영 일선에서 물러나며 한국비료공장(현 롯데정밀화학)과 대구대학을 정부에 넘기게 됨
사카린 밀수 사건은 당시 정권이 정치 비자금 조성 목적으로 삼성의 밀수를 눈 감아주는 공범이었는데, 김두한에 의해 여론이 난리나자 정부가 뒤통수를 치며 삼성 혼자 독박쓰고 삥뜯긴 것이라고 함
당시 한국 비료는 첫 해 매출액이 그룹 전체 매출액의 30%에 이를 정도로 삼성 입장에서도 알짜배기 기업이었다고 함
삼성그룹은 이맹희가 이끌다가 이병철에게 밉보여 막내아들 이건희가 삼성그룹의 공식적인 차기 수장으로 지명됨
후계 구도에서 밀려난 이창희는 정권 인사들을 끼고 부친을 몰아내려는 쿠데타 시도를 한 후 실패하고, 그룹에서 쫒겨남, 나중에 용서받음
1966년 고려병원 설립, 1977년 삼성중공업, 삼성종합건설주식회사 설립, 삼성정밀(현 한국항공우주산업, 한화에어로스페이스의 전신)을 설립
1969년 삼성전자 설립
1982년 암 수술의 고비를 넘기고 보스턴 대학교 명예 경영학 박사 학위 수여식을 위해 미국에 방문했는데 이 때 미국이 흔들리는 것을 봄
미국이 설계한 생산설비를 도입한 일본이 자동차, 반도체 등의 미국 시장을 거꾸로 침식하고 있었으며, 미국은 이 위기에 대응하지 못하고 있었음, 이것을 보고 반도체 사업을 추진할 계획을 세움
기술진 확보를 위해 미국에 있던 유학파들을 대거 스카우트, 맨땅의 헤딩의 각오로 반도체를 자체 개발했고
1983년 64K D램 개발에 성공함, 이는 국가등록문화재로 등록됨
일본의 덤핑 공세에 반도체 가격이 하락하며 적자가 나서 직원들이 손을 떼야한다고 했으나 이병철은 '내 눈엔 돈이 보여'라며 밀어붙이고 생산라인 증설하며 신제품 개발에 나섬
1984년 256K D램 개발에 성공하고, 1년 만에 세계 D램 시장의 1/10을 점유, 세계 최고의 반도체 글로벌 기업이 됨
1989년 16Mb D램을 1위 기업과의 기술 격차를 1개월까지 줄이며 세계 2번째로 개발하고, 1992년 64Mb D램을 세계 최초 개발
이후 256Mb, 1Gb D램을 모두 세계 최초로 개발
폐암과 치아 건강이 좋지 않아 말년에는 건강 문제로 고생함
10년 투병 생활 후 사망함
폐암은 유전될 수 있으며, 맏아들 이맹희도 폐암으로 세상을 떴으며, 3남 이건희 역시 폐질환과 심근경색으로 사망함
이병철의 대대를 잇는 삼성가는 일반인보다 약한 폐와 사르코마리투스병이 유전으로 전해진다고 함
이건희 겨울에 주로 하와이 별장으로 떠났으며, 이재용도 집 공기 상태가 하와이 별장에 준할 만큼 맑게 해놓는다고
어록
있을 때는 겸손하라. 그러나 없을 때는 당당하라
자신감을 높여라. 기가 살아야 운이 산다.
자꾸 막히는 것은 우선 멈춤 신호이다. 멈춘 다음 정비하고 출발하라.
공부하고 발전하는 것은 인간으로서 당연한 길이다.
힘들어도 웃어라. 절대자도 웃는 자를 좋아한다.
한 발만 앞서라. 모든 승부는 한 발자국 차이다.
가난한 마음으로는 가난을 벗어날 수 없다.
성공의 비결은 일에 대한 열정과 꾸준한 노력이다.
자신감을 높여라. 기가 살아야 운이 산다.
게으름은 스스로를 파멸하는 행위이다.
어느 사업이나 실패의 위험은 다 있는 법이지만 가장 위험한 것은 처음부터 실패할 여지가 있다는 생각을 안고 일에 착수하는 것입니다.
헛되게 세월을 보낸다고 하더라도 무엇인가 남는 것이 있을 것입니다. 문제는 헛되게 세월을 보내는 데 있는 것이 아니라, 그것을 어떻게 받아들여 훗날 소중한 체험으로 그것을 살리느냐에 있습니다.
필자의 견해
이병철은 기회를 잘 포착하는 인물인 것 같다. 전쟁 중에 남은 탄피를 회수해 되팔은 것과 미국의 실정을 보고 반도체 산업의 가능성을 본 것. 기회에 발빠르게 착수하고 뚝심있게 밀고 나가 글로벌 1위의 삼성전자가 탄생된 것 같다. 항상 초격차로 1등을 달렸던 삼성이 현재 위기를 어떻게 극복해낼지 궁금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