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물 탐구ㅣ'이봐, 해봤어?' 현대 창업주, 정주영
기본 인적사항
출생 1915.11.25 (강원도 통천군 답전면 아산리)
사망 2001.03.21 (향년 85세)
가족 배우자 변중석 / 아들 정몽필, 정몽구, 정몽근, 정몽우, 정몽헌, 정몽준, 정몽윤, 정몽일 /
동생 정인영, 정순영, 정희영, 정세영, 정신영, 정상영 /
손자 정의선, 정문선, 정대선, 정기선 / 손녀 정일선, 정성이, 정명이, 정윤이, 정지이
학력 통천송전소학교
별명 왕회장
업적
현대그룹의 창업주이자 초대회장, 대한민국의 대표적인 1세대 기업인
쌀 배달부터 시작해 자동차 정비업, 건설업 등을 거쳐 한국의 경제 성장을 견인한 인물
생애
6남 2녀 중 첫째로 태어남
고향 마을 아산리의 이름을 따서 그의 호는 '아산'이며 아산의료원, 현대자동차 울산공장 앞 도로인 아산로도 호를 딴 이름임
정주영은 농사일을 하다가 여러번 가출한 이력이 있음
1930년대 신단동의 쌀가게 '복흥상회'에서 쌀 배달 점원으로 성실하게 일하다가 주인 눈에 띄어 정주영에게 가게를 매도하였고,
정주영은 3년 후 쌀가게 '경일상회'를 차림
일제가 쌀 배급제를 시행하면서 쌀가게는 문을 닫고 '아도 서비스'라는 자동차 수리공장을 세움
하지만 아도 서비스에 불이 나 입고된 차들이 모두 타버렸고, 화신백화점을 운영하다 전소된 경험이 있던 박흥식의 도움을 받음
1947년 서울에 건설 회사를 차렸으며, 이후 한국전쟁이 터지고 통역 장교였던 동생 정인영의 도움으로 미군 관련 공사를 점담하며 창립 10년만에 전국 10대 건설사로 성장
고령교 복구 공사에 막대한 사채를 쓰고 완공에 성공하며 사업규모를 확장시켜 현대그룹을 만듦
박정희 대통령이 정주영에 조선소 건립을 지시함
조선소 지을 돈을 빌리기 위해 영국 바클리스 은행에 차관 도입을 협의했지만 거절당함
바클리스에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는 선박 컨설턴트 회사의 회장 롱바텀에게 500원 지폐의 거북선을 보여주며
"우리는 영국보다 300년 앞서 철갑선을 만들었다"고 설득하며 추천서를 받아냄
그럼에도 바클리스 은행은 배를 구매하겠다는 주문서를 가져오면 차관을 빌려주겠다고 함
정주영은 롱바텀으로부터 그리스의 선박왕 아리스토 오나시스의 처남인 리바노스가 값싼 배를 구한다는 소식을 접하여 그에게 26만톤 짜리 선박 수주 계약을 따냄
약속을 지키지 못하면 계약금에 이자를 얹어 주고, 배에 하자가 있으면 원금을 돌려준다는 파격적인 조건이었으며 이 말을 듣고 리바노스도 일종의 도박을 건 것임, 정주영은 그에 대해 "나보다도 미친 사람"이라고 표현함
한국 정부도 보증을 서줘서 바클리스 은행에서 차관을 빌려 조선소 건설, 배를 만듦
알파 엔진을 개발할 때, 미쓰비시의 구보 회장이 로얄티 반값 할인을 조건으로 연구소를 닫으라고 요청함
정주영은 이를 성공 가능성이 있는 것으로 보아 개발을 밀어붙여 대한민국 최초의 독자 개발 엔진인 알파 엔진을 만듦
석유 파동으로 중동에 돈이 몰린 당시, 한국의 건설사는 중동 시장에 진출함
현대건설은 타건설사의 반값을 제시하며 입찰에 참여하였음
정주영은 공사비를 아끼고 기간을 단축하기 위해 모든 기자재를 바지선에 실어서 옮김
태풍이 자주 부는 곳이어서 난파될 가능성이 있었으나 천운으로 계획이 제대로 실행됨
난파될 경우 현대그룹은 없었을 수 있음
전두환 정부 때 올림픽 유치 의지는 있었으나, 돈이 많이 들고 경쟁 도시인 일본이어서 경쟁에 밀릴 것이라 판단하며 포기 상태였음
나고야 올림픽 유치 위원에 비싼 시계를 IOC 위원들에게 나워주며 홍보하는 데 반해 정주영은 꽃바구니를 돌리면서 홍보함
정주영은 물량보다는 성의로 다가갔으며 1988년 하계올림픽 유치에 성공
1992년 제 14대 대통령 선거에 출마하였으나 낙선 후 정치 보복이라 의심 당할 만한 일을 당함
예) 검찰의 소환 조사, 비자금 조성 및 불법 선거운동 혐의로 출국금지 처분 등
문민정부 출범 이후 2년동안 현대그룹의 돈줄을 묶어놓아서 현대는 오직 미국계 시티은행에서만 대출을 받을 수 있었음
이는 전화위복으로 IMF 때 타격을 덜 입을 수 있었음
하지만 대북 사업을 통해 침체기를 이겨냄
서울아산병원에서 폐렴으로 인한 급성 호흡부전증으로 향년 87세로 사망
어록
시련이란, 뛰어 넘으라고 있는 것이지 걸려 엎어지라고 있는 것이 아니다.
길이 없으면 길을 찾고 찾아도 없으면 길을 닦아가면서 나가면 된다.
참다운 지식은 직접 부딪혀 체험으로 얻는 것이며, 그래야만 가치를 제대로 아는 것이다.
'시간은 돈'이라고들 하나, 나는 '시간은 생명'이라고 하고 싶다.
인류의 모든 발전은 긍정적인 사고를 가진 사람들의 주도 아래 이루어졌다.
우리는 원대한 꿈과 긍정적인 청사진을 가지고 미래를 내다 보아야한다.
세상을 밝게 맑게 바르게 보고 이 사회에 보탬이 될 목적으로 살면 할 일은 태산처럼 많다.
우리는 혹독한 시련을 견디고 뛰어넘는 산 공부를 해가며 강인해졌다.
자기 자신의 실패는 가슴깊이 새겨 두어야 한다. 실패를 망각하는 사람은 또 다른 실패가 있을 뿐이다.
사람은 나쁜 운과 좋은 운을 동시에 가지고 있다. 즐겁게 일할 수 있는 시간이 좋은 운이다. 열심히 일하는 사람에게는 나쁜 운이 들어올 틈이 없다. 운이 나쁘다고 말하는 사람들은 대개 게으르다.
직장은 월급 때문에 다니는 곳이 아니고 자신의 발전때문에 다녀야 한다.
내가 행복감을 느끼면서 살 수 있는 것은 이 세상을 아름답고 밝게, 희망적으로, 긍정적으로 보기 때문이다.
내가 평생 동안 새벽 일찍 일어나는 것은 그날 할 일이 즐거워서 기대와 흥분으로 마음이 설레기 때문이다.
어떤 실수보다도 치명적인 실수는 일을 포기해 버리는 것이다.
안된다고 보는 사람이 많을수록 기어코 해내고 말겠다는 결심은 더 굳세어지고, 일이 되도록 하기 위한 노력을 더욱 더 치열하게 할 수 밖에 없어진다.
무슨 일이든 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해내는 법이다. 의심하면 의심하는 만큼 밖에 못하고, 할 수 없다고 생각하면 할 수 없는 것이다.
무슨 일에든 절대 중도 포기하지 않고 노력을 쏟아 붓는다면 이루지 못할 일이 없다.
긍정적인 사고가 행복을 부른다.
모든 일은 가능하다고 생각하는 사람만이 해낼 수가 있다.
나는 어떤 일을 시작하든 "반드시 된다"는 확신에 90%에 "할 수 있다"는 자신감 10%로 100%를 채우지, 안될 수도 있다는 회의나 불안은 단 1%도 끼워 넣지 않는다.
불굴의 도전, 모험정신 이것으로 누구나 다 성공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그 이면에는 치밀한 검토와 확고한 신념이 있어야 한다.
설혹 우리 앞에 놓인 일이 어렵고 복잡하더라도 우리는 주저함과 두려움 없이 무난히 해낼 수 있는 자신과 용기가 있다.
매일이 새로워야 한다. 어제와 같은 오늘, 오늘과 같은 내일을 사는 것은 사는 것이 아니라 죽은 것이다.
작은 일을 소홀히 하는 사람은 큰 일을 할 수 없다. 작은 일에도 최선을 다하는 사람은 큰 일에도 전력을 다한다.
소극적인 사람은 작렬하는 태양 아래서 일하는 고통만 생각하지 일을 끝내고 나무 그늘에서 바람을 쐬며 휴식할 때 만끽하는 행복감을 생각하지 못한다.
모든 일의 성패는 그 일을 하는 사람의 사고와 자세에 달려 있다. 진취적인 정신, 이것이 기적의 열쇠이다.
이것은 다만 우리의 시련일 뿐이지 실패한 것은 아니다. 꿈을 버리지 않는 한 실패란 있을 수 없다.
나는 생명이 있는 한 실패는 없다고 생각한다. 내가 살아있고 건강한 한 나한테 시련은 있을지언정 실패는 없다.
필자의 견해
정주영 회장의 확신은 '성실성'에서 온다고 생각한다. 작은 일도 소홀히 하지 않고, 난관에 부딪혀도 포기하지 않고 성실히 도전하며 수많은 성공 경험을 만들어 왔다. 이는 곧 자신에 대한 확신으로 이어졌을 것이다. 스스로를 믿기 때문에 아무리 어려운 상황이더라도 주위 사람들도 그를 믿고 도움의 손길을 내밀었으며, 그는 어김없이 극복하여 약속을 지켰다. 인간의 가능성은 무한하다는 말의 본보기가 되는 인물이다. 그의 어록 중 '시련이란 뛰어 넘으라고 있는 것이지 걸려 엎어지라고 있는 것이 아니다.' '길이 없으면 길을 찾고 찾아도 없으면 닦아가면서 가면 된다.' 라는 문장이 와닿았고, 그의 걸어온 발자취를 보면 말과 행동이 동일한 사람이다. 인간으로서 존경스럽고 멋있다.